오션드라이브 스튜디오의 신작 <로스트 아이돌론스: 베일 오브 더 위치>가 SRPG와 로그라이크라는 두 장르의 융합을 시도하며 정식 출시됐다. 정밀한 전략과 빠른 변수를 동시에 요구하는 이 게임은, 과연 두 장르의 장점을 살려냈을까? 정식 출시판을 기준으로 게임성과 시스템을 분석하고, 얼리 액세스 이후 개선점이 반영되었는지 살펴본다.
SRPG와 로그라이크의 만남, 그 실험의 시작
<로스트 아이돌론스: 베일 오브 더 위치>(이하 베일 오브 더 위치)는 SRPG와 로그라이크를 결합한 독특한 구조의 게임이다. 겉으로 보기에 이 두 장르는 상극처럼 느껴진다. SRPG는 예측과 계산, 반복과 정밀함을 기반으로 하며, 로그라이크는 무작위성과 긴장감, 반복 실패를 동력으로 삼는다. 게임은 이 상반된 두 요소를 융합해 보려는 실험을 한다. SRPG의 전통적인 턴제 전략 시스템 위에 로그라이크의 절차적 생성과 무작위 보상 구조를 얹은 것이다. 얼핏 보기엔 신선하고 도전적인 조합처럼 느껴지지만, 실제 플레이에서는 두 장르의 물리적 충돌이 느껴지기도 한다. SRPG 팬은 계획적 육성과 안정적인 전투의 재미를 기대하지만, 무작위 요소가 이를 방해할 수 있다. 반면 로그라이크 유저는 빠른 템포와 높은 리플레이 가치를 기대하지만, SRPG의 느린 진행과 정적인 구조는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다. 이러한 구조적 딜레마는 정식 출시판에서도 완전히 해소되진 않았다.
무작위 성장 시스템, 전략인가 스트레스인가
이 게임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은 바로 성장 시스템의 무작위성이다. SRPG에서 성장 요소는 매우 중요한 전략적 재미 요소지만, <베일 오브 더 위치>는 로그라이크 요소를 반영해 스탯 성장을 무작위로 설계했다. 예를 들어, 캐릭터가 전투 후 레벨업을 해도 마법사에게 불필요한 물리 방어력 같은 스탯이 오르는 경우가 빈번하다. 이 결과는 카드 시스템과 확률에 기반하고 있으며, 높은 등급의 카드일수록 확실한 상승률을 보인다. 하지만 일반적인 등급의 카드는 체감이 어려울 정도로 성장 효과가 미미하다. 그나마 장비 성장에서 얻는 피드백은 비교적 뚜렷하다. 특정 등급 이상의 장비를 성장시키면 새로운 스킬이 해금되고, 장비에 따라 전투 전략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캐릭터 자체의 성장이 무작위에 의존하다 보니, 플레이어는 자신이 원하는 육성 방향 대신 주어진 결과에 맞춰 ‘맞춰가기’만 해야 하는 인상을 받는다. 이 시스템은 한편으론 다양성을 줄 수 있지만, 동시에 전략의 주도권이 유저가 아닌 시스템에 있다는 점에서 큰 단점이 되기도 한다. 특히 SRPG 팬층은 이런 부분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정식 출시판, 얼리 액세스의 ‘잔가시’를 제거했을까?
기자는 과거 얼리 액세스 당시 <베일 오브 더 위치>를 “맛있지만 잔가시가 남는 음식”이라 표현한 바 있다. 전략성과 전투의 재미는 충분했지만, 성장 구조나 반복 플레이 유도 방식에서 거슬리는 요소들이 있었다는 의미다. 정식 출시판에서는 일부 편의성 개선과 UI 최적화가 이루어졌고, 장비 성장 구조나 일부 밸런싱 조정도 있었다. 하지만 핵심적인 문제였던 무작위성 기반 성장 시스템, 재화 수급의 피로도, 전투 스테이지 구성의 단조로움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특히 반복 플레이를 전제로 한 로그라이크 구조임에도 불구하고, 플레이 동기를 지속시키는 데에는 다소 부족한 느낌을 준다. 전투의 구성은 제한적이고, 보상 루트는 비슷한 구조로 반복되며, 게임을 다시 시작할 때마다 ‘새로운 경험’을 준다기보다 ‘같은 길을 다시 걷는 느낌’이 강하다. ‘불의 제단’ 등 영구 성장 요소는 존재하지만, 해당 재화를 모으는 과정은 고된 편이며, 단판 클리어를 위해 선택을 포기해야 하는 구조적 모순이 있다. 이로 인해 현재판의 성취와 다음판의 성장을 놓고 유저가 갈등하게 되는 구조가 반복된다. 결국 반복을 유도해야 할 로그라이크 구조가 오히려 반복을 회피하게 만드는 아이러니가 생긴다. <로스트 아이돌론스: 베일 오브 더 위치>는 SRPG 팬과 로그라이크 팬 모두를 만족시키려는 야심찬 시도를 한 게임이다. 전투 시스템의 전략성, 클래스 설계의 깊이, 장비 성장 등은 분명 강점이지만, 성장의 무작위성과 반복 플레이 유도 실패라는 단점이 발목을 잡는다. 장르 융합은 단순한 결합이 아닌, 각 요소의 강점이 부드럽게 어우러져야 한다. 정식 출시판에서도 ‘잔가시’는 여전히 존재하며, 플레이어마다 이 요소를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따라 평가가 크게 갈릴 수 있다. 기존 SRPG 팬이라면 높은 전략성과 전투 재미를 즐길 수 있지만, 성장 과정의 피로도는 감수해야 한다. 로그라이크 팬이라면 빠른 템포와 보상의 희열은 기대하기 어려울 수 있다. 결국 <베일 오브 더 위치>는 장르 융합의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준 실험적인 게임으로 남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