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드는 선행 기술이 아니다.” 닌텐도의 이 한 문장이, 게임 산업 전반에 거대한 논란의 불씨를 던졌다. 최근 <팰월드>를 개발한 포켓페어와 <포켓몬스터>의 원저작자인 닌텐도 간의 법적 분쟁이 본격화된 가운데, 닌텐도가 법원에 제출한 이 같은 주장이 게임 업계는 물론, 창작 커뮤니티 전반에 충격을 안기고 있다.
닌텐도 주장 - “모드는 독립 기술 아냐”
논란의 발단은 닌텐도가 도쿄 지방 법원에 제출한 서류에서 “모드는 독립적으로 실행될 수 없는 파생 콘텐츠이므로, 선행 기술로 간주할 수 없다”고 밝히면서 시작됐다. 이는 포켓페어 측이 반박 증거로 제시한 여러 게임 모드 사례, 특히 <다크 소울 3>의 포켓몬 유사 모드인 ‘포켓 소울’의 증거 능력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의도로 풀이된다. 선행 기술이란, 특정 기술이나 아이디어가 특허로 출원되기 이전에 이미 공개되어 있던 사실이나 사례를 말한다. 선행 기술이 존재할 경우, 해당 특허는 ‘신규성’을 상실하게 되어 무효화될 수 있다. 포켓페어는 이를 활용해 닌텐도의 <포켓몬스터> 관련 게임 메커니즘 특허들이 이미 유저 커뮤니티에서 구현됐다고 주장 중이다. 닌텐도는 이에 대해 “모드는 원본 게임이 있어야만 작동 가능하며, 독자적인 기술이나 완성된 저작물로 보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사실상 모드 제작자들의 창작 활동 전반을 기술적 가치가 없는 부속물로 간주하는 셈이다.
법적 분쟁 - 법률 전문가들 “명백한 창작 폄하” 비판
닌텐도의 주장에 대해 법률 및 IT 업계 전문가들은 강도 높은 비판을 내놓고 있다. 유럽 기반의 소프트웨어 특허 분석가 플로리안 뮬러는 “모드에는 수많은 창의적인 발명과 아이디어가 포함돼 있으며, 이를 단순한 파생물로 취급하는 것은 명백한 창작 폄하”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실행 주체가 독립적이지 않다고 해서 기술적 기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바로 소프트웨어 산업에서 선행 기술을 판단하는 핵심”이라며, 닌텐도의 법리적 논리를 전면 반박했다. 또 다른 법률 전문가 리처드 호그 역시 “선행 기술의 본질은 아이디어가 이미 공개되어 있었느냐의 여부다. 구현 방식의 정교함이나 플랫폼의 독립성과는 관계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닌텐도의 입장은 창작자의 권리를 부정하고, 특허 독점을 위한 의도적 축소 해석”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만약 법원이 닌텐도의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수많은 모드 개발자들의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사장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는 향후, 기업이 모드의 개념이나 기능을 특허화한 뒤 원작자인 커뮤니티 제작자에게 되려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위험한 선례로 작용할 수 있다.
파장 - 게임 업계 전반에 미칠 파장 불가피
그동안 게임 업계에서 모드는 창의성과 실험의 원천으로 인정받아 왔다. <도타>, <카운터 스트라이크>, <배틀로얄> 장르조차도 유저 모드에서 시작됐으며, 이들은 훗날 거대한 게임 장르로 발전했다. 모드를 통해 실험된 시스템이 본 게임에 도입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이런 현실을 무시한 채, 닌텐도가 ‘모드는 특허에 대한 선행 기술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한다면, 모드 커뮤니티 전반이 위축되고, 창작의 자유가 크게 훼손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소규모 개발자들 사이에서는 “향후 법적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모드 개발을 중단하겠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법조계는 이번 사안을 매우 중요한 선례로 보고 있다. 일본 법원이 이례적으로 ‘모드는 기술이 아니다’는 입장을 채택할 경우, 글로벌 게임 시장에 부정적인 신호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법원은 일반적으로 선행 기술의 범위를 폭넓게 인정해 왔고, ‘2차 창작’이란 이유로 이를 배제한 사례는 드물다. 현재까지 판결은 나오지 않았지만, 업계에서는 닌텐도가 법적으로 승소하더라도 도덕적, 창의적 신뢰를 잃을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반대로 패소할 경우, 모드가 창작과 기술의 범주에 속함을 법원이 다시 한번 확인하는 중요한 이정표가 될 수도 있다.이번 분쟁은 단순히 <팰월드>와 <포켓몬>의 유사성 문제를 넘어, 게임 산업 전체가 창작물의 개념과 권리를 어떻게 다루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게임은 기술이자 문화이며, 그 바탕에는 커뮤니티와 유저 창작자의 힘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