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들은 삶이 불안할 수록 어떤 것을 붙잡으려 든다. 계획과 기준을 세우고 스스로에게 더 엄해짐으로써 이 상황을 타개하러 한다. 그래야 이 상황을 이겨낼 수 있고 안심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경험으로 알고 있는 것들이 있으니, 바로 통제를 강화할 수록 마음이 불안해진다는 것이다. 하루를 더 촘촘히 관리하는데도 불안함은 줄지 않고 오히려 작은 변수가 내 하루를 더 쉽게 흔들고는 한다. 이런 모순적인 현상은 왜 생겨나는 것일까. 이 글은 이런 모순에 대해 설명한다.
통제는 왜 불안을 해결해줄 것처럼 보일까
통제는 불확실성을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처럼 여겨진다. 계획을 세워 미래를 예측할 수 있게 하고 기준을 만들어 선택을 단순화한다. 그래서 우리는 불안한 상황에 놓이면 그 상황을 통제하려고 한다. 문제는 우리가 통제하려는 대상이 우리의 삶 그 자체라는 것이다. 삶은 변수로 가득하고 예측되지 않는 것들이 끊임없이 나타난다. 그래서 통제가 불가능하다. 하지만 우리는 통제 불가능한 삶을 통제하려고 든다. 이 시도는 처음에는 안정감을 줄 수 있다. 그러나 변수가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삶에 대한 통제가 제대로 먹히지 않고 통제는 오히려 부담감으로 다가온다. 관리해야 할 항목이 늘어나고, 지켜야 할 기준이 많아질수록 실패 가능성도 함께 커지기 때문이다.
통제는 불안을 없애지 않고 이동시킨다
통제는 불안함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한다. 대신 불안의 형태를 바꿔 막연한 불안을 구체적인 불안으로 바꾼다. 예전의 막연했던 불안함은 이제 계획과 기준을 지키지 못한다는 불안함으로 바뀐다. 기준을 넘지 못할까봐, 관리에 실패할 까봐, 루틴이 망가질까봐 등등. 이런 불안이 막연한 불안함보다 훨씬 날카롭게 다가온다. 구체적이고 세세한 내용의 실패들을 겪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강한 통제가 더 예민한 마음을 만든다.
통제 중심의 삶은 항상 ‘어긋남’을 전제로 한다
통제에는 숨겨진 전제가 있는데 바로 통제가 어긋날 수 있다는 가정이다. 계획을 세우면서 계획에 벗어나는 순간을 가정해 그에 대한 계획까지 세운다. 그래서 통제 중심의 삶은 항상 감시 받는다. 내가 지금 계획에 따라 잘 살고 있는지, 내 기준에서 이탈하지는 않았는지 등 내 계획에 맞춰 나를 끊임없이 감시한다. 이런 구조에서 삶은 피로를 느낀다. 삶을 살아가는 시간보다 내가 '잘 살고 있는지' 확인하는 시간이 늘어난다. 몸이 움직이고는 있지만 내 마음은 체크리스트에 쏠려있다. 이 상태에서는 쌓이는 피로가 해소되지 못하고 불안도 늘어난다.
통제는 자기 신뢰를 대체하지 못한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신뢰를 통제를 통해서 얻으려 한다. 계획과 기준을 지킴으로써 나 스스로에 대한 신뢰를 얻고 그것을 유지해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얘기가 조금 다르다. 통제는 자기 신뢰를 쌓기보다는 자기 신뢰를 잃는 데 더 일조한다. 강한 통제는 오히려 나 스스로가 통제 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 이런 반복은 조금씩 자기 신뢰를 깎아내린다. 계획이 없거나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한 날엔 스스로에 대한 불안함을 느끼게 된다. 자기 신뢰는 통제가 없이 계획에서 벗어났음에도 다시 복구했었던 경험과 흐름 속에서 만들어진다.
통제하려는 순간, 회복의 여지는 줄어든다
통제 중심의 사고는 실패 이후의 선택지에 제한을 둔다. 계획을 어기거나 기준에 닿지 못한 순간은 실패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이 때 사람들은 극단적으로 생각하며 움직인다. 아예 포기하거나 더 강하게 통제하거나. 둘 다 회복과는 거리가 있는 것이다. 반대로 통제를 조금만 내려놓자. 그러면 회복의 여지가 생긴다. 기준이 낮거나 없을 때 사람은 다시 회복할 수 있다. 운동이 삶에 가르쳐주는 감각이 이런 것이다. 계획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운동 계획이 망가졌을 때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능력. 그런 것이다.
불안을 줄이는 방향은 통제가 아니라 여유다
불안함을 줄이고 싶다면 더 많은 통제 대신 더 많은 여유를 갖자.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방임과 포기가 아니라 변수를 포함해 생각하라는 것이다. 오늘 내 계획이나 루틴이 망가질 수도 있고 내일은 또 다른 변수가 있을 수도 있다는 전제를 두는 것. 이 전제가 불안함을 줄인다. 여유 있는 구조에서 통제는 어디까지나 보조적인 수단으로 남는다. 삶 전체를 쥐고 흔드는 것이 아니라 필요에 의해 사용하는 도구인 것이다.
덜 쥘수록 더 오래 간다
삶을 통제하려 할 수록 우리는 더 불안해진다. 변수 투성이인 삶에서 또 어떤 것이 나의 통제를 흔들지 불안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통제를 내려놓을 때 우리 삶은 더 안정된다. 운동과 습관, 일상 모두 마찬가지이다. 모든 것을 쥐고 가려고 하면 어떤 것이든 손에서 빠져나가기 마련이다. 하지만 조금 내려놓는다면 남은 것들을 더 잘 그러쥘 수 있다. 지금이 불안하다면 오히려 지고 있는 것들을 내려놓는 연습을 해보자. 불안함은 사라지지 않을 지 몰라도 여유가 더 늘어날 것이다. 덜 쥐어도 괜찮다는 감각. 그 감각이 생기는 순간, 삶은 생각보다 조용하게 제자리를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