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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콘매치와 E스포츠, 낭만, 과거, 변화

by 은하수 고양이 2025. 9.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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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콘 매치와 E스포츠

지난 9월 13일과 14일, 넥슨이 주최한 ‘아이콘 매치’가 작년에 이어 두 번째로 열리며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루니, 베일, 마이콘, 제라드, 호나우지뉴, 드록바 등 전 세계 축구 팬들이 이름만 들어도 가슴 벅차지는 레전드들이 출전한 이번 이벤트 매치는, 단순한 친선 경기를 넘어 시대와 세대를 초월한 ‘낭만’의 축제였다. 이들의 방한과 플레이만으로도 팬들에게는 추억을 소환하기에 충분했고, 단지 과거의 향수를 넘어 지금의 스포츠가 잃어버린 무언가를 되짚는 계기가 되었다. 본 글에서는 아이콘 매치가 주는 상징성과, 유사한 흐름을 겪어온 스타크래프트 시절, 그리고 현재 LoL e스포츠가 맞닥뜨린 변화와 고민에 대해 조명해본다.

 

3아이콘 매치

 

낭만 - 단순한 ‘과거의 향수’만은 아니다

아이콘 매치 2025는 과거의 슈퍼스타들이 공격팀과 수비팀으로 나뉘어 경기를 펼치는 형식의 이벤트 매치였다. 이 대회의 성공을 단순히 향수 마케팅이라고 치부할 수 없는 이유는, 오히려 현대 축구의 빈틈을 정확히 짚어냈기 때문이다. 현재 축구는 펩 과르디올라 감독을 기점으로 ‘포지션 플레이’라는 전술 혁신이 정착되었고, 전술은 더 정교해졌으며, 시스템은 더욱 조직화되었다. 그 결과 팀마다 개성이 줄어들고, 선수 한 명의 압도적인 존재감은 과거에 비해 분명 약해졌다. 팬들 사이에서도 “요즘 축구는 재미없다”는 회고적 평가가 종종 나온다. 반면, 아이콘 매치에서는 각 선수의 창의성과 개성, 예측 불가한 움직임이 그대로 살아 있었고, 팬들은 경기 내내 환호를 멈추지 않았다. 이는 단순히 과거를 미화하는 행사가 아니라, 현재가 채워주지 못하는 ‘개성의 결핍’을 직접 체험하며 느끼는 감동이었다. 게다가 루니의 중거리 슛, 제라드의 압박과 시야, 호나우지뉴 특유의 여유 있는 터치 등은 관중들에게 “이래서 레전드구나”라는 탄성을 자아내게 만들었다.축구가 점점 ‘전술 게임’으로 바뀌는 가운데, 아이콘 매치는 선수 개인의 개성과 플레이 감각,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이야기와 감정이 왜 중요한지를 다시 한 번 일깨워주는 계기였다. 팬들은 단순한 승부보다도, ‘낭만’이라는 이름의 감정을 다시금 떠올릴 수 있었다.

과거 - 스타크래프트 황금기, 개성 있는 경기의 전성시대

아이콘 매치가 떠오르게 만든 또 하나의 사례는 바로 한국 e스포츠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는 스타크래프트 시절이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정형화된 전략이나 고도로 최적화된 피지컬보다는, 맨땅에 헤딩하듯 각자의 스타일로 도전하는 개성 넘치는 선수들이 즐비했다. “폭풍 저그”, “대나무 테란”, “한방 토스”, “우주방어” 등 선수 한 명, 한 명이 독자적인 색깔을 갖고 있었고, 경기를 보는 팬들 역시 그만큼 다양한 시나리오와 반전을 기대할 수 있었다. 경기력의 수준은 지금보다 낮았을지 몰라도, ‘과연 오늘은 어떤 전략이 나올까’라는 설렘은 오히려 더 컸다. 스타리그, MSL, 프로리그 등에서 펼쳐지는 매 경기는 단순히 승패가 아닌 ‘스토리’였다. 특정 선수의 기발한 전략, 단 하나의 리버, 럴커, 드랍십이 경기의 분위기를 바꿔놓았고, 그 하나하나의 플레이가 명장면이자 이야기로 남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프로게이머들은 더 이상 ‘스타일’을 앞세우지 못했다. 승리를 위한 최적화된 방식이 연구되면서, 개인의 색보다 '승률 높은 방법'을 따라야 하는 시대로 전환되었다. 이른바 ‘양산형 게이머’들이 등장하며, 경기력은 높아졌지만 그에 비례해 ‘보는 재미’는 떨어졌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피지컬의 경이로움에는 감탄할 수 있지만, 그 옛날 ‘낭만’을 느끼긴 어려워졌다. 아이콘 매치가 보여준 감동은, 바로 이 ‘개성’의 부재를 다시 상기시켜주는 현상이기도 하다.

변화 - 롤 e스포츠의 현재, 체계와 흥행 사이의 균형

LoL도 마찬가지다. 15주년을 맞은 LoL은 세계에서 가장 큰 e스포츠 플랫폼이 되었지만, 동시에 ‘정형화’라는 벽에 부딪히고 있다. LCK 역시 수많은 명경기와 전설적인 서사를 만들어냈지만, 요즘의 LCK를 바라보는 팬들의 시선에는 아쉬움도 공존한다. 라이즈 그룹과 레전드 그룹의 경기 분위기가 확연히 다른 것만 봐도, 팬들의 관심이 ‘선수 개인의 서사’에 집중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예전 LCK에는 특정 챔피언을 완벽하게 다루던 장인들이 있었다. '페이커의 르블랑', '스멥의 케넨', '데프트의 이즈리얼' 등은 팬들에게 밴픽 자체만으로도 긴장감을 주었고, 기상천외한 조합이나 전략이 자주 등장하면서 보는 재미를 더했다. 그러나 지금은 다재다능한 육각형 선수들이 주를 이루며, 승리를 위한 안정적 운영이 최우선이 되었다. 창의성보다는 확률, 감각보다는 시스템이 앞서는 경기에서는 변수가 줄고, 개성은 희미해진다. 라이엇 게임즈도 이를 인지하고 변화를 시도해 왔다. 대격변 패치, 새로운 밴픽 시스템 도입(피어리스 드래프트), 메타 다양화 등 다양한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오랜 시간 누적된 시스템의 무게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결국, 새로운 팬층 유입보다, 기존 팬들의 이탈을 방지하고 그들의 추억과 감정을 지켜줄 수 있는 ‘낭만 요소’가 필요하다. 아이콘 매치는 바로 이 ‘감정의 가치’를 상기시켜주는 이벤트였다. 경기가 완벽했기 때문이 아니라, 선수 개개인의 이름이 가진 서사, 플레이 하나하나에 담긴 스토리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기 때문이다. 롤 e스포츠도 다시 한 번 그런 ‘감정의 서사’를 구축할 수 있는 시도가 필요한 시점이다. 아이콘 매치 2025는 단순한 추억팔이가 아닌, 스포츠와 e스포츠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묵직한 질문을 던진 이벤트였다. 정교하고 완성도 높은 경기력도 중요하지만, 그 안에 담긴 개성과 이야기가 없다면 진정한 감동을 주긴 어렵다. LCK와 롤 e스포츠가 다음 10년을 준비하는 지금, 다시금 '낭만'을 복원할 수 있는 창의적인 변화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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