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루를 마감할 때 오늘만큼은 아무에게도 보여줄 것이 없을 때가 있다. 특별히 잘 한 일도 없고 누군가에게 말 할 만한 성과도 없고, 스스로에게도 뭐라 딱히 설명되지 않는 날. 기록으로 남기기도 애매하고 기억도 하기 싫은 그런 날. 우리는 이런 날을 대개 실패한 날이라고 생각하고는 한다. 하지만 삶을 조금 긴 호흡으로 보게 되면 실제로는 그런 아무 것도 하지 않은 날들이 우리 삶을 유지시켜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무도 보지 않고, 아무도 평가하지 않고, 나 스스로도 별스럽지 않게 생각하는 그런 날들. 우리는 그 보이지 않는 날들이 왜 삶과 습관의 유지를 받쳐주는 지 알아보겠다.
우리는 왜 보이는 하루만을 중요하게 여길까
사람들은 하루를 마감할 때 되돌아볼 수 있는 것에 대해 안도한다. 오늘 무엇을 했고 어떤 의미가 있었고 어떤 성과를 거뒀는지. 그 것들을 설명할 수 있을 때 그 하루를 산 하루 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설명되지 않는 날은 마치 공백처럼 느껴진다고 생각한다. 이 인식은 자연스럽게 생긴 것이 아니다. 우리는 오랫 동안 성과 중심의 시간 감각에 익숙해져 왔다. 보여줄 수 있는 성과가 있어야 하고 기록으로 남길 수 있어야 하고 증멸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아무도 보지 않는 날은 스스로에게조차 설득시키기 어렵다. 하지만 삶은 원래 그런 설명할 수 없는 날들 위에 서 증명된다. 설명이 되는 날들은 결과에 불과하며 그 결과를 받치는 것은 대부분 조용한 날들이다.
보이지 않는 날은 삶의 하중을 분산시킨다
우리 삶에는 보이지 않는 짐이 지워져 있다.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는 압박, 실제 평균보다 훨씬 높게 잡혀있는 삶의 평균, 남들에게 뒤쳐지는 것 같다는 불안함 등등이다. 이 하중은 하루 이틀에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쌓여만 간다. 보이지 않는 날들의 역할이 바로 이런 짐과 압박들을 분산시키는 것이다. 우리가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좋은 날,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날들이 삶에 지워지는 짐을 잠시 내려놓게 한다. 운동을 예로 들자. 강도 높은 운동은 한 날보다 가볍게 몸을 풀거나 푹 쉰 날이 근육의 성장에 큰 도움이 된다. 이런 날들은 기억에 남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히 큰 도움이 된다.적으로 만든다.
습관은 드러나는 행동보다 보이지 않는 유지에서 살아남는다
사람들은 대개 습관을 눈에 보이는 것으로만 생각한다. 무엇을 몇 번이나 했는지 무슨 성과가 있었는지. 하지만 실제로 습관을 유지하는 힘은 그런 행동과 생각들이 없는 날에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았지만 관계가 이어진다고 생각하는 것, 그리고 오늘 쉬었으니 내일 다시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 이런 생각들이 습관을 살린다. 반대로 행동이 있었던 날이라도 스스로를 너무 몰아부치고 평가했다면 습관은 오히려 무너진다. 겉으로 보이는 성과보다 보이지 않는 해석과 인식이 더 중요하다.
아무도 보지 않는 날에 자기 신뢰는 조용히 쌓인다
자기 신뢰는 남들의 인식보다는 스스로에 대한 생각에서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 신뢰는 대부분 아무도 보지 않는 순간에 만든 선택들로 생겨난다. 오늘 특별한 일을 하지 않았다고 해도 본인 스스로를 과하게 비난할 필요는 없다. 오늘 흐트러졌어도 내일을 포기하지는 않는다. 이런 선택들이 눈에 띄지 않게 자기 신뢰를 회복시킨다. 이런 신뢰는 위기 상황에서 특히 유용하다. 몸이 안 좋을 때, 일정이 뒤틀렸을 때 등등 이런 변수들 속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준다.
항상 보여야 하는 삶은 오래가지 못한다
모든 날에 의미가 있어야 하고 설명 가능해야 한다는 기준은 인간에게는 과한 것이다. 이 기준은 결국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연출하는 것으로 만든다. 어떻게든 남에게 보여줄 수 있는 성과가 있는 하루만을 살다보면 내게 주어진 휴식의 날들을 버티지 못한다. 오롯이 휴식을 가져야 하는 날에도 어떻게든 의미를 부여하려 하고 아무 것도 하지 않은 날은 마치 실패한 것처럼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삶은 나를 위한 것이지 남에게 보여주는 무대가 아니다. 조명을 받을 필요도 없고 관객이 있 을 필요도 없다. 관객과 조명이 없는 그 순간이 바로 다음 장면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다.
보이지 않는 날을 존중할수록 삶은 길어진다
눈에 보이지 않는 날을 존중할 수록 삶이 길어진다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날을 특별하게 만든다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그 날을 보이지 않는 그대로 두겠다는 것에 가깝다. 보지 않는 날에 억지로 의미를 두려 하지 말고 그냥 그대로 휴식하는 것. 이런 태도가 쌓이면서 우리는 더 단단해진다. 운동과 습관, 관게 모두 마찬가지이다. 항상 무언가 특별한 날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 보이지 않는 날들이 쌓여서 특별한 날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준다.
삶은 조용한 날들 위에 놓여 있다
지금껏 살아온 날들을 되돌아보면 사실 기억에 남는 날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사이사이에 있었던 보이지 않는 조용한 날들이 없었더라면 그 많지 않은 날들조차도 기억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아무도 보지 않는 날은 실패하는 날이 아니다. 오히려 나의 삶을 받쳐주는 기초공사 같은 역할을 한다. 오늘이 그런 보이지 않는 날들이었다면 굳이 의미를 두거나 설명하려 애쓰지 않아도 좋다. 그 하루는 보이지 않지만 이미 역할을 다 한 하루이다. 삶은 잘 보이는 날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날들로 유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