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하필 "4대 중독"인가
천출(賤出). 이제는 사극에서나 나올 법한 단어다. 누군가 대뜸 "천출이냐" 묻는다면, 분노보다는 어이가 앞설 것이다. 조선시대도 아닌데, 이런 말이 어디서 나올까. 그러나 게임을 둘러싼 한국 사회의 인식은 여전히 '천출'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문화로 인정받기보다 병리적 대상이자 사회 문제의 원인처럼 취급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최근 성남시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는 인터넷게임을 "4대 중독" 중 하나로 지정하고, 이를 AI를 활용해 예방하자는 공모전을 개최했다. 나머지 세 가지는 알코올, 약물, 도박이었다. 즉, 게임을 이들과 동일선상에서 취급한 것이다. 게이머들은 즉각 반발했고, 해당 공모전은 비판 여론 속에 조용히 삭제됐다. '4대 중독'이라는 표현은 2012년 중독포럼에서 처음 등장했다. 이들은 한국 사회를 '중독 공화국'이라 규정하고, 국가중독관리위원회 설립을 주장했다. 당시 정신과 출신 국회의원이 '4대 중독 예방법'을 발의하며 사회적 논란이 확대되었다. 인터넷과 게임은 도박, 마약, 술과 함께 묶여 규제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이 법안은 결국 폐기되었지만, 디지털 디톡스, 스마트폰 중독 같은 이름으로 맥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과학적 근거는 여전히 부족하다. WHO가 게임 이용장애를 질병으로 분류했으나, 해당 결정의 타당성에는 의문이 제기된다. 메타 분석 결과 게임이 폭력성을 유발한다는 증거는 부족하다는 결론이 나왔으며, 5년간의 종단 연구에서도 게임과 문제 행동 사이의 연관성은 확인되지 않았다.
성남 - 왜 하필 성남인가
이런 인식이 되살아난 장소가 하필 성남이라는 점 또한 아이러니하다. 2019년 자유한국당 윤종필 의원은 성남 판교에 "게임중독은 질병"이라는 현수막을 내걸어 큰 논란을 일으켰다. 당시 출퇴근하던 개발자들은 분노했고, 게임업계 노동조합이 이에 맞서 현수막을 게시하는 등 강하게 반발했다. 성남은 단순한 도시가 아니다. 국내 최대의 게임 클러스터다. 2024년 성남시는 약 8,000억 원의 지방소득세를 징수했으며, 이 중 상당수가 게임·IT 업계에서 나온 것이다. 넥슨, 크래프톤, 스마일게이트 등 주요 게임사가 몰려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성남시장은 늘 "게임 도시"를 강조해왔다. 이재명 대통령은 시장 시절 "성남을 지스타의 도시로 만들겠다"고 했고, 은수미 전 시장은 "게임의 메카"를 자처하며 인디크래프트와 같은 행사를 유치했다. 신상진 시장도 "게임 개발자의 열정을 지원하겠다"며 관련 축제를 지속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이런 곳에서 "게임 중독 예방 콘텐츠"를 공모한다니, 그 이중성이 뼈아프다.
낙인 - "중독" 낙인의 늪
폭력 유발 근거도 미약하고, 수천억 원의 세수를 가져다주는 산업인데도, 게임은 여전히 '낙인'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문화로 인정받기 위한 수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누군가는 게임을 도박과 약물과 함께 묶는다. 이는 단지 낡은 시각의 문제가 아니라, 게이머와 개발자 모두에게 상처가 되는 표현이다. 과거 게임은 문화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래서 '게임은 문화다'라는 캠페인이 전개되었고, 결국 문화예술진흥법에 게임이 포함되는 결과를 이끌어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여전히 사회 일각에서 게임이 '문화'로 온전히 받아들여지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누군가는 말할지도 모른다. 천출이든 하위문화든, 돈만 잘 벌면 된다고. 하지만 그런 태도는 산업 전체에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 셧다운제, 4대 중독법 등 논란에서 게이머들은 항상 게임 산업과 한 편에 서 있었다. 하지만 이 신뢰가 흔들린다면, 게임 산업은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거대한 반격을 맞이할 수도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신중한 인식과 책임 있는 행동이다. 게임은 누군가에겐 직업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겐 삶의 일부분이다. 문화는 곧 사람이다. 사람을 함부로 낙인찍는 사회가 건강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리고 문화산업을 천출처럼 다루는 태도는, 결코 건강한 사회의 모습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