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넷마블이 구로 G타워에 개관한 넷마블게임박물관은 게임의 역사와 가치를 재조명하는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하려 합니다. 제주 넥슨컴퓨터박물관에 이어 두 번째 게임박물관입니다. 게임 속에서도 우리는 랜드마크 건설에 매혹돼 왔습니다. <심시티 3000>의 63빌딩, <문명> 시리즈의 불가사의가 대표적이죠. 플레이어에게는 웅장한 건물의 완성과 성취감이 큰 의미를 줍니다. 하지만 현실 속 랜드마크 건설은 단순한 만족감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게임 속 랜드마크와 현실의 유혹
<문명> 시리즈에서 스톤헨지, 만리장성과 같은 불가사의는 막대한 자원과 시간이 소요되지만 완성 후 주는 보너스는 분명합니다. 반면 현실 정책 입안자에게 랜드마크는 상징성과 정치적 성과를 과시하기 좋은 수단입니다. 인터넷에 흔히 보이는 대게나 인삼 모양의 조형물처럼, 지역마다 자신들만의 기념물을 남기려는 열망이 끊이지 않습니다. 그 위용은 눈길을 끌지만, 유지 비용과 활용성은 늘 뒷전이 되곤 합니다. 사실 한국 사회에서 ‘랜드마크 집착’은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지역 균형 발전을 내세우며 건설된 수많은 전시관, 체험관, 문화회관이 제대로 운영되지 못하고 방치된 사례는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물 완공 당시에는 큰 박수를 받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관리비 부담만 남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또다시 “게임이라는 이름을 붙인 랜드마크”가 지어진다면 같은 길을 반복하지 않을까 우려가 큽니다.
문체부의 게임 콤플렉스 구상
문화체육관광부는 3월 6일 발표한 ‘문화한국 2035’에서 ‘게임 콤플렉스’ 건립을 메가프로젝트로 제시했습니다. 박물관, 아카이브, 전시·체험 시설을 모두 담는 복합 공간을 2030년까지 만들겠다는 계획입니다. 그러나 이 시도는 낯설지 않습니다. 이미 2020년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최대 523억 원을 들여 게임문화박물관을 짓겠다고 했다가, 부실한 용역보고서 논란 끝에 무산된 전례가 있습니다. 새로운 계획 역시 “세계 4위 게임강국 위상”을 강조하지만, 실질적 효과는 여전히 의문입니다. 해외 사례를 보면 시사점이 있습니다. 일본 교토의 ‘닌텐도 본사 아카이브’는 소규모지만 특정 브랜드의 정체성과 역사를 알리는 데 집중하며 꾸준히 관람객을 모으고 있습니다. 미국 뉴욕의 ‘비디오게임 아트 박물관’ 역시 대규모 건물 대신 탄탄한 학예팀과 기획 전시로 차별화를 시도합니다. 화려한 외형보다 내용과 운영 전략이 핵심이라는 교훈을 보여줍니다.
랜드마크 집착의 명암
현재 한국에는 제주 넥슨컴퓨터박물관, 서울 넷마블게임박물관 등 이미 두 곳의 게임박물관이 존재합니다. 여기에 문체부가 또 다른 ‘게임 콤플렉스’를 짓는 것이 타당할까요? 과거 ‘지역거점 e스포츠 경기장’이 부산·광주·대전에 세워졌으나 가동률이 40% 내외에 그친 사례를 떠올리면 우려가 큽니다. 건물이 위상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스포츠 명예의 전당’이나 ‘새만금메타버스체험관’의 전례에서도 확인됐습니다. 랜드마크 건설이 성급하면, 게임 속과 마찬가지로 재정적 곤란에 빠질 수 있습니다. 문체부는 이번에 ‘라키비움(LAM, Library·Archive·Museum)’ 개념을 도입해 자료와 기록, 전시를 아우르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국민 세금으로 추진되는 대규모 프로젝트라면, 단순한 건물 건설이 아니라 충실한 연구와 운영 방안을 먼저 세워야 합니다. 게임 유산의 보존, 학술 연구, 개발사 아카이브 구축, 교육 프로그램 확대 등 소프트웨어적 토대가 부실하다면 그 어떤 건물도 금세 껍데기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많은 게임에서 무리한 랜드마크 건설은 플레이어를 파산 직전까지 몰아넣습니다. 현실도 다르지 않습니다. 문체부가 진정으로 세계 4위 게임강국의 위상을 공고히 하고자 한다면, 보여주기식 건축보다 산업 생태계 전반을 지원하는 정책이 우선입니다. 예산을 어디에, 어떻게 쓰느냐는 단순한 ‘건설 여부’ 이상의 무게를 가집니다. 랜드마크 건설이 문화적 자산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훨씬 더 깊은 고민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