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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럽의 기적, 성덕 그리고 진심 없는 게임 도태

by 은하수 고양이 2025. 9.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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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덤 컴 2 딜리버런스

 

 

 

동유럽의 기적

 

열흘 뒤면 봉준호의 신작 <미키 17>이 개봉한다. <기생충>으로 영화사를 새로 쓴 봉준호의 컴백이다. 기자는 문득 다큐멘터리 <봉준호를 찾아서>를 떠올렸다. 2015년, 세 명의 고등학생은 영화감독이 되기 위한 조언을 듣기 위해 무작정 봉준호를 만나기로 결심한다. 인맥도 없는 이들은 페이스북을 뒤지고, 영화 잡지사를 찾아가고, 영화과 교수들에게 전화를 돌리며 방법을 모색한다. 끝내 봉 감독이 자주 찾는 카페에서 마주한 순간, 그들의 천진난만한 꿈은 현실이 되었고, 봉 감독은 "누군가의 눈치를 보지 말고 자신을 만족시켜라"라는 진심 어린 조언을 전했다. 이 다큐는 '진심은 통한다'라는 메시지를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게 만든다. 최근 기자는 <킹덤 컴: 딜리버런스 2>에 푹 빠졌다. 전작은 수많은 버그와 최적화 문제로 혹평을 받았지만, 개발사 워호스는 꾸준한 개선으로 신뢰를 얻었고, 후속작은 한층 나아진 완성도로 호평을 받았다. 출시 하루 만에 개발비를 회수했고, 스팀 동시접속자 수는 16만 명에 달했다. 이는 체코 게임사가 전 세계 시장에서 거둔 놀라운 성과이자, '동유럽의 기적'이라 불릴 만한 사례다. 무엇보다 주인공 헨리가 마법도 드래곤도 없는 현실적인 중세 세계를 살아가야 한다는 점에서 진정성이 느껴진다. 갑옷을 손질하는 대장장이, 검술을 시연하는 배우 등 게임스컴 현장에서 보여준 장인 정신은 단순한 흥행을 넘어 '덕후들의 집념'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성덕이 된 개발자

<데이브 더 다이버>의 황재호 디렉터는 <용과 같이> 시리즈 팬임을 숨기지 않는다. 그는 야쿠자들이 낚시, 골프, 장사 등 생활 콘텐츠를 즐기는 모습에서 영감을 얻어 <데이브 더 다이버>를 만들었다. 결과는 500만 장 판매 돌파와 <용과 같이>와의 공식 컬래버레이션으로 이어졌다. 팬이던 대상과 직접 협업하게 된 그는 '성덕'이 됐다. 이는 단순한 마케팅의 산물이 아니라, 개발자가 오랜 시간 품어온 진심이 게이머와 시장을 움직였음을 보여준다. 비슷하게 시프트업은 <승리의 여신: 니케> 오케스트라 콘서트를 열어 4,400석을 전석 매진시켰고, 끝난 뒤에도 MD 구매를 기다리는 줄이 이어졌다. 개발자와 게이머가 서로의 열정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진심 없는 게임은 도태된다

인공지능이 창작을 빠르게 대체하는 시대지만, AGI에는 '덕후의 몰두'나 '성덕의 감격' 같은 감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기자는 인공지능을 쓰지 않는 게임보다, 진심 없는 게임이 더 빨리 도태될 것이라 믿는다. 게이머들은 "어차피 사겠지"라는 얄팍한 태도를 금세 알아차린다. 그들은 진심이 담긴 게임을 찾아 <킹덤 컴>, <데이브 더 다이버>, <니케>로 향한다. 결국 업계가 기억해야 할 것은 '누구보다 사랑한 덕심'이 만들어내는 힘이다. 게임의 본질은 언제나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에 있었다. 최신 그래픽과 기술이 아무리 화려해도, 게이머가 느끼는 울림이 없다면 오래 기억되지 못한다. 반대로 투박하더라도 개발자의 애정과 철학이 담겨 있으면, 게이머는 그것을 알아보고 지지한다. 동유럽의 작은 스튜디오나 한국 인디팀이 전 세계적인 성과를 내는 이유는 결국 '진심'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AI와 자본이 결합된 시장에서조차, 결국 최후에 살아남는 것은 게이머와 공감하는 마음, 그리고 성덕이 된 개발자의 뜨거운 몰두일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어떻게든 봉준호를 만나고야 말겠다"거나 "중세를 완벽히 구현하겠다"는 천진난만한 진심이다. Audentes Fortuna Iuvat, 행운은 용기 있는 자의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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