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스컴 2025는 ‘세계 최대의 게임쇼’라는 수식어에 걸맞은 규모와 열기를 자랑했다. 특히 인디게임이 집결된 10.2관은 미로처럼 얽힌 작은 부스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어 하루 만에 모든 작품을 둘러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람 중 눈에 띈 몇몇 게임들은 짧은 인상만으로도 강한 흡인력을 보여줬다.
콘셉트의 진화, 독창성이 돋보인 게임들
<레인98>은 90년대 도쿄를 배경으로 한 ‘로우파이 심리 스릴러 로맨스 어드벤처’다. 멸망을 원하며 수첩에 씰을 붙이는 소녀와 타임슬립한 주인공의 이야기를 통해, 디지털과 아날로그 감성이 공존하는 시대적 분위기를 풍부하게 녹여낸다. 세일러복과 90년대 문화를 결합한 아이디어는 케이팝 콘서트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알려졌다. 한글화가 확정되었으며, 2025년 출시 예정이다. <여기 자리 있나요?>는 사람들의 성격과 조건을 고려해 좌석을 배치하는 퍼즐 게임으로, 영화관, 택시, 결혼식 등의 공간에서 일어나는 사회적 갈등을 퍼즐로 풀어낸다. 그 참신한 발상 덕분에 게임스컴 ‘Most Wholesome’ 후보로도 올랐다. 2025년 8월 출시됐지만 한글화는 지원되지 않는다. <스카이 더 스크래퍼>는 유리창을 닦는 청소부라는 직업에 생존 요소를 접목한 게임이다. 고층 빌딩을 오르내리며 시간을 다투는 청소 액션 외에도, 번 돈으로 세금·집세·치료비를 내고 피로를 관리해야 하는 현실적인 요소가 인상 깊다. 일본 인디 씬에서 수상 이력이 있으며, 2025년 7월 출시되었다.
레트로풍 아트워크, 시각적 취향 저격
<스타베일 프로토콜 A.A.A.>는 PC-98 시절 일본 어드벤처 게임의 감성을 고스란히 옮겨온 텍스트 기반 RPG다. 디스토피아 세계관 속 집행관과 AI 파트너의 모험을 그리며, 주사위 굴림과 스킬 체크 같은 TRPG 요소도 갖추고 있다. 고전 게임 마니아들에게는 깊은 향수를 불러일으킬 작품으로 보인다. <노, 아임 낫 어 휴먼>은 인간과 흡사한 ‘방문자’를 판별해야 하는 호러 시뮬레이션으로, 태양 폭발과 외계 존재라는 설정이 가미된 로컬58 스타일의 공포가 돋보인다. 뉴스 속 정보로 단서를 파악하고, 스스로 생존 결정을 내려야 하는 심리적 압박감이 강하다. 2025년 9월 16일 출시 예정이며, 한글화가 확정되어 있다. <드로운드 레이크>는 호수의 과거와 괴생명체를 다룬 어드벤처 호러 게임이다. 브라질 민담과 지역 신화를 바탕으로 구성된 세계관이 특이하며, 실루엣을 낚는 낚시 시스템과 시점 전환 등의 독특한 연출이 눈에 띄었다. 출시일은 미정이지만 한글화는 지원 예정이다.
문화와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시도
<언비터블>은 애니메이션 감성의 리듬 게임으로, 음악과 스토리가 어우러진 몰입형 콘텐츠다. <뮤즈 대쉬>와 유사한 방식의 플레이에 강렬한 애니 연출을 더했으며, 음료 서빙 등의 미니게임도 포함됐다. 11월 7일 정식 출시 예정이나 한글화는 미정이다. <밴딧 나이트>는 도둑이 주인공인 2.5D 픽셀 RPG다. 전통 RPG 스타일을 따르면서도, 도둑이라는 직업의 특성에 맞춰 소매치기와 은신, 훔치기 등 독특한 콘텐츠가 중심이 된다. 제2회 GYAAR 콘테스트에서 플래티넘 등급으로 선정되었으며, 2026년 봄 출시 예정이다. 게임스컴 2025는 단순히 게임을 ‘보는’ 자리가 아니라, 지금 이 시점 게임 개발자들이 어디까지 실험하고, 어떤 상상력을 추구하는지를 엿볼 수 있는 공간이었다. 특히 인디 부스의 작품들은 비주류, 비정형, 비대중적이라는 수식어를 넘어, 진짜 ‘새로운 것’이 탄생하는 현장을 생생히 보여줬다. 이번에 소개한 게임들은 그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지만, 각각의 콘셉트, 아트워크, 문화적 배경은 게이머와 개발자 모두에게 시사점을 남겼다. 이름만 기억해두고 돌아온 게임들이 한국에서도 주목받길 바라며, 다음 게임스컴에서는 이들이 어떤 모습으로 다시 등장할지 기대해 본다.